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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초보/무전여행 - 통영to부산

부산까지 걷다 - 첫날(2)

yundabal 2017. 8. 26. 00:00


 부산까지 걷다 - 첫날(2)

[남망산 도착]

 좀 허탈한 맘을 뒤로하고 근처의 정자나 가고 쉬려고 했는데 정자에서는 아저씨 여러명이 앉아 고기를 굽고 있었다. 그래서 우린 그냥 계단에 철푸덕 앉아 셀카나 찍었다.

[남망산 계단에서]

 곧 있으면 어두워질 것만 같아서 여기서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다. 빨리 통영을 떠나야 한다. 우리는 같은 길을 두 번 걷기는 싫어서 버스를 타기로 했다. 정류장으로 이동하는 길에 통영 먹거리를 검색했는데 꿀빵과 충무김밥이 나왔다. 뭘 고르던지 딱 1인분만 사서 먹을려고 했는데 1인분이 꿀빵은 5천원 충무김밥은 4천원이란다. 더 황당한 것은 충무김밥은 포장도 안됐다. 결국 우리는 눈물을 머금고 포기해야만 했다.

[통영의 항구]

 우리는 버스에서 내리고 터미널 근처에 있는 이마트로 들어갔다. 뭐 사먹으려고 한건 아니고 시식코너 좀 들려서 배 좀 채우기 위해서다. 때마침 어머님들이 장 볼 시간대라서 시식하는곳이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다행이도 시식코너가 있었다! 시식이라서 간에 기별도 안 차는 양이었지만 맛은 그 반대로 끝내준다. 앞으로 대형마트는 무조건 들리리라 우린 다짐을 하면서 편의점으로 이동했다.

 우린 점심과 똑같이 저녁도 라면으로 때웠다. 이번에는 짜장라면. 어차피 라면밖에 못 먹을 것 같은데 종류라도 다르게 해서 먹으리라. 저녁을 해결하고 나서 우리는 통영을 떠나기 위해 서둘러 길을 나섰다. 벌써부터 날이 어두워져가는 것에 나는 살짝 불안해졌다.


 통영 시내를 벗어나자 77번 국도가 보였다. 차만 쌩쌩 내 옆을 지나치기만 하고 인도가 도무지 안 보였다. 어느새 주변은 컴컴해져 버렸다. 나는 이때가 5박 6일의 여행 중에서 가장 암담했다. 벌써부터 어디에서 잘지가 걱정된다. 그러나 걱정은 하면 안 된다...


1. 걱정하지 말것

2. 창피하지 말것


 나는 이 두가지만은 꼭 지키자고 다짐했었기 때문이다. 특히 1번만큼은 꼭 지켜야 한다. 요즘들어 너무 걱정만 하고 지냈다. 학업. 취업. 얼마 남지 않은 친구들. 하나 같이 걱정 안되는 게 없었다. 데일 카네기가 '자기 관리론'에서 말했지. 걱정 따위는 하지 말라고. 그런데 도무지 소용이 없었다. 어떻게 걱정을 안 할 수가 있어. 내가 지금 그지 같은데. 난 이모양 이 꼴인데. 이따위로 살아왔는데. 앞으로도 이따위로 살것 같은데!!!


 내 앞길이 점점 뻔해짐을 느낄때는 잠도 제대로 못 잘 정도로 불안하다. 후회뿐인 과거, 암담한 현재, 불안한 미래. 빠져나올 의지도 없이 단순히 걱정만 했던 나다. 그러나 이번 여행만큼은 절대 걱정하지 않겠다! 걸으면서 내 머리속에 가득한 걱정들을 하나하나 다 꺼내어 버려야지. 77번 국도에서도 걱정 세 개 정도는 놓고 가리라.


 우리는 점점 이정표 대신에 네이버지도에만 의지하면서 걸어갔다. 어두워서 이정표도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도중에 햇갈리게 갈라지는 길들이 많아서 네이버지도는 필수였다. 불안했지만 그래도 여행의 첫날이기 때문에 그나마 좀 여유로운 편이었다. 걷다보니 차들도 점점 없어서 우리는 나란히 걸으면서 걸어갔다.


 이젠 완전히 깜깜해져서 가로등 없이는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을 때, 우린 77번 도로에서 시내로 들어왔다. 도중에 잠시 택시를 세우고 담배를 피우고 있는 기사님에게 길을 물어보았는데, 이 기사님이 아니었으면 우리는 정반대로 걸어갔을 것이다. 네이버지도를 보면서도 길을 못찾다니 좀 창피하다.


 이제는 많이 걷는 것보다 잠 잘 곳을 찾는게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자. 마을회관. 건물 옥상들이 간혹 보이긴 했는데 어딘가 마음에 들지가 않다. 저 곳들은 사람들에게 너무 노출되는 장소기 때문이다. 우리가 무슨 트루먼쇼의 트루먼도 아니고. 잠만큼은 편안하게 자고 싶다.


 잠자리를 찾지 못한 우리 눈 앞에 결국 다시 77번 국도가 나왔다. 이렇게 된거 밤새 걸을 각오를 하고 걸었는데 걷다보니 이건 아니지 싶다. 길이 너무 위험하다! 뒤에서 대형트럭이 내 어깨를 스칠 정도로 지나가는데 정말 간이 콩알만해졌다. 나는 차에 치일까봐 차 오는 소리가 뒤에서 들리면 손전등을 껐다 켰다 하면서 걸었다.


 횡단보도가 나왔을때 우리는 잠시 길바닥에 앉아서 쉬었다. 더이상 위험해서 못 간다. 때마침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반대편에 절이 있다는 이정표가 보인다. 우리는 절에 가서 하룻밤 재워달라고 부탁하기로 했다. 만약 안된다고 하면 절 근처에서 침낭 피고 자버리기로 했다. 이 길바닥보다는 사람 사는 곳이 훨씬 낫다.


 이제 슬슬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을때 신호에 걸린 차들 중 하나에서 조수석 창문이 열렸다.


 "너희들 여기서 뭐하니? 어디로 가고 있어?"


 4~50대의 중년 여성분이 딱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바고 있었다.


 "아. 저희는 무전여행 하고 있거든요. 도중에 잠시 쉬고 있어요."

 "그래? 장하구나."


 뭔가 좀 아쉬웠다. 태워달라고 하면 정말 태워줄 분위기였다. 영민이도 이런 생각이 들었는지 먼저 선수를 쳤다.


 "저희들 밝은 곳까지만 태워주시면 안될까요?"

 "그래. 그래. 타렴."


 신호가 다시 바뀌자 차는 우리 앞의 갓길로 이동했다. 우린 갑자기 일어난 행운에 연신 감사합니다만 반복했다. 운전자분과 조수석의 여성분은 알고보니 부부였다. 두 분과 얘기를 하면서 주변을 돌아보며 깨달은 사실은 우린 지금 사람이 걸을 수 없는 길을 걸었었다는 것이다. 77번 국도는 차에 안 치이는게 오히려 이상한 길이었다. 갓길이 너무 좁아서 게걸음으로 벽에 붙어서 가야할 정도였다. 등골이 서늘하다라는 것이 이런 느낌일까? 만약에 저기를 계속 걸었다면.... 아찔하다..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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