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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까지 걷다 - 둘째 날(1)

yundabal 2017. 8. 27. 20:17

부산까지 걷다 - 둘째 날(1)

드르르르. 쾅쾅~! 우르르 쾅쾅! 

 평소엔 잘 들리지도 않는 진동소리가 천둥소리처럼 귓속으로 파고든다. 오늘따라 평소보다 더 시끄럽게 느껴지는군. 5시 30분. 아침잠 많은 나에겐 굉장히 이른 시간이다. 그러나 아줌마가 “애들아 아직도 자니? 쯧쯧. 어여 밥 먹어!” 라고 우릴 깨우시는 최악의 일이 발생하는 것을 막아야 하기에 일찍 일어나야만 한다.

 나는 어제 처음 본 그대로 이불을 개었다. 그리고 화장실에 들어가서 머리도 감고 면도도 하고 마무리로 양치까지 끝냈다. 오늘처럼 이렇게 제대로 씻는건 마지막이지 않을려나? 방에 다시 들어가니 나보다 먼저 씻었던 영민이가 무엇을 권했다.

“형도 이거 쓸래?”

 어제 나를 그렇게나 웃겼던 문제의 그 드라이기다. 난 잠시 고민했지만 결국 드라이기를 사용하기로 했다. 난 머리 감고 잘못 말리면 머리카락이 붕 뜨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자를 준비하긴 했지만, 굳이 드라이기가 있는데 걍 쓰지 뭐.

 우리는 모든 준비를 끝마치고 거실로 나갔다. 아줌마는 아침 준비를 하고 계셨고, 우린 얌전히 식탁 앞에 앉아서 기다렸다. 식탁 뒤에 창으로 밖을 바라봤는데 가슴이 확 트인다. 시골의 한적함이랄까? 확실히 서울과는 느낌이 확 다르다.


<아줌마의 텃밭>

 두 분은 나중에 드신다고 하셔서 우리끼리 먼저 아침을 먹었다. 사진 속의 텃밭에서 따오신 상추에다가 갈비를 얹어 먹었다. 정말 호화스러운 아침이다. 아침에 먹는 갈비에다가 유기농 야채까지!

 아침을 먹고 방에 돌아와 짐을 다시 꾸렸다. 옷까지 갈아 입으니까 정말 상쾌하다. 어제 집에서 출발한 것보다 컨디션이 더 좋다! 다시 한번 방을 정돈하고 나와서 아줌마, 아저씨에게 작별 인사를 드렸다. 핸드폰 번호도 교환하면서 나중에 꼭 연락 드린다고 말씀 드렸다. 두분은 우리를 배웅하면서 끝까지 미소를 잃지 않으신다. 정말 고맙습니다!!!


<두 분이 살고 계시는 아파트>

밖으로 나왔는데 무척 상쾌하다. 이런 기분이면 하루만에 부산을 갈 수 있을 것 같다. 아침이라서 날씨도 선선하다! 그렇게 한껏 가벼운 발걸음으로 가다가 이정표 중에서 하나를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창원이 얼마 안 남았다!>

 창원이 65키로 밖에 안 남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아온 남은 거리가 항상 세자리였기에 두자리가 좀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래. 얼마 안 남았어! 65키로 정도야 금방 걸어주지. 하하하...

그러나 곧.

"하 더워....."

 망할놈의 해가 우릴 괴롭히기 시작했다. 시원한 바람이 좀 불어오면 나으련만, 서늘한 그늘이 있으면 좀 쉬련만. 그 딴건 가도가도 안 보인다. 끝없이 이어지는 도로만 있을 뿐이다. 하긴 저 놈의 도로는 계속 가도 끝이 없겠지. 계속 우리나라를 돌고 돌아서 이어질테니깐.


<아줌마가 챙겨주신 바나나와 비스켓>

 그렇게 몇시간이나 걸었을까. 아줌마가 챙겨주신 바나나가 더위에 상할까봐 먹어야 한다는 핑계로 우린 잠시 길가에 앉아서 쉬었다. 챙겨줄수 있는게 이거밖에 없다고 미안해 하시면서 우리에게 주신 바나나와 비스켓. 나는 다시 한번 그 고마움을 떠올리며 감사히 먹었다. 비스켓은 나중에 먹기로 하고 일단 바나나만 먹었다. 나는 바나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오늘은 정말 맛있게 먹었다.

 바나나를 다 먹고나서 다시 걷기 시작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땡볕더위가 심해져서 걷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그러다가 학교가 보이길래 들어갔다. 수돗가에서 땀을 좀 씻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다 씻고나서 배낭에 걸었던 옷걸이의 수건을 꺼내서 빨았다. 중간에 땅에 몇번 떨어져서 수건이 좀 더러워졌었거든... 다 빨고나서 다시 옷걸이에 걸려고 하다가 목에다 그냥 한번 매봤는데...

"오! 이거 죽이는데?"

 너무 시원했다! 목에 촥 감기는 이 차가움. 이거 계속 이렇게 차고 있으면 목도 시원하고 햇볕에 타지도 않으니까 1석 2조잖아? 그래! 이거야! 난 이날부터 계속 목에다가 수건을 둘러매고 다녔다. 영민이에게도 나처럼 하기를 권했지만 영민이는 수건을 목에 대는 대신에 다른 용도로 사용했다. 가방끈 밑으로 수건을 받친 것이다. 그렇게 매니까 무게가 분산되는지 훨 나은 모양이다. 이래저래 유용한 수건이네.


<내 뒷모습>

힘들땐 뒤를 돌아봐. 그동안 네가 걸은 길들이 너에게 힘을 줄꺼야. 넌 할수 있어.

 무슨 노래 가사 같지 않은가? 저건 영민이가 한 말인데 걷다가 힘들면 뒤를 돌아보았단다. 자신이 걸은거라곤 믿어지지 않은 길들을 보면 힘이 난다나? 나도 이 말을 들은 후 가끔씩 뒤를 돌아보았다. 걷는다는게 확실히 느린 이동수단이긴 하다. 그러나 1시간, 2시간 계속 걷다가 잠깐 뒤를 돌아보면 확실히 많이 이동한 티가 나서 새삼 내가 자랑스러워지곤 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와. 바다다!>

확실히 바다를 옆에 끼고 걸으면 덜 지루하긴 하다. 산이나 바다나 계속 보면 지루한건 매한가지이긴 하지만, 그래도 바다를 보면 확 트이는 느낌이다. 무엇보다 바닷바람이 부니까 시원하다!


<바다를 배경으로>

 이번 무전여행에서 내가 중시하는 것은 "무전"보다는 "걷기"이다. 무슨 말이곤 하니 난 돈 안 쓸려고 여행 도중에 알바하면서 돈 버는 것은 좀 꺼림직했다는 거다. 그냥 하루 왠종일 걷는 것만 하고 싶었다. 도중에 멈춰서 뭘 하고 싶지 않았다는 거다. 그래서 우리의 무전여행은 어떻게 보면 좀 심심하다. 밥 먹거나 잠깐 쉬는 거 외엔 항상 걸었으니까. 그래도 완전 무전은 아니지만 반무전은 했으니 난 좋다. 난 이번 여행이 너무너무 좋다!

 에휴. 그나저나 오늘은 어디서 잔다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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