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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초보/무전여행 - 통영to부산

부산까지 걷다 - 셋째 날(2)

yundabal 2017. 8. 31. 23:44

부산까지 걷다 - 셋째 날(2)


<터널 입구>

 나는 터널 입구를 보자 숨이 턱하고 막히는 것 같았다. 터널은 여행 출발 전에 내가 가장 우려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저 안은 매우 어둡고 공기는 차들의 매연으로 가득하다. 더군다나 당연하게도 터널은 밀폐되어 있기 때문에 옆으로 지나가는 차들의 속도가 체감상 더 빠르게 느껴진다.

 그런데 터널 안으로 들어가기 전부터 문제가 생겼다. 저기 동그라미로 표시한 것 처럼 나무의 일부가 길을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우리는 어쩔수 없이 약 2m터 쯤 되는 공간을 차도로 삥 돌아서 가야 한다.

"이런 망할.."

 터널 입구로 가까이 갈수록 터널 안에서 빠져나오는 차들의 속도가 등골이 섬뜩할 정도로 빠르게 느껴졌다. 차가 지나가는 효과음이 쌔앵~ 이 아니라 쓔우웅~~ 이다. 나는 나무 밑으로 기어서 가려고 하다가, 순간 갑자기 짜증이 치밀어서 차가 잠깐 안 올때를 노린 후 옆으로 뛰어서 돌아갔다. 영민이도 조금 망설이더니 나처럼 행동했다.


<터널 내부>

 터널 안에는 걸어갈만한 턱이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걸어가는 것은 문제가 없다. 그런데 공기 질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최악이다. 숨 쉴때마다 코 안이 매연으로 가득차는 느낌이랄까? 입으로 숨 쉬는 것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다. 진짜 생각 같아서는 수건으로 얼굴 전체를 돌돌 말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는 평소에 걸어가면서 자주 중심을 잃는다. 그런데 여기서는 절대 그러고 싶지 않아서 오직 내 발만 보고 걸었다. 온 집중을 다해서 걷기만 하다보니까 속도가 정말 빨라졌다. 이렇게만 걷는다면 5일이 아니라 3일만에도 부산을 가겠구나 할 정도였으니까.

 나는 한참 걷다가 사진이나 찍어볼까 멈추고 뒤를 돌아봤는데 영민이가 한참 뒤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내가 그렇게 빨리 걸었나? 나는 영민이가 근처까지 오길 기다렸다.

"형이랑 사진찍을까하고 계속 불렀는데 안 들렸나봐."

 정말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시끄러워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내 안전에만 신경쓰다 보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암튼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터널이다.


<터널 정복>

20분 정도 계속 걸었을까. 드디어 터널이 끝났다!!!

"씨x. 드디어 끝났다!!!!"

긴장이 확 풀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욕이 터졌다. 그런데 터널을 빠져나오자마자 우리를 맞이하는 건.

끝 없는 도로. 엄청난 더위. 심해지는 갈증. 

 와우~ 끝이 안 보이는 길을 걷는다는 것이 얼마나 지치는 건지 이번 여행을 통해서 계속 깨닫게 된다. 그래도 다행히 중간에 휴게소가 나와서 우리는 잠깐 쉴 수가 있었다. 내가 휴게소에 있는 수돗가에서 수건을 적시고 있는 동안 영민이는 물집 가득 잡힌 발에 반창고를 붙였다.

 영민이의 물집은 어제부터 잡히기 시작했는데 오늘은 좀 더 심해졌다. 반창고를 5개 이상 붙인 것 같다. 영민이는 왠만하면 괜찮다고 하는 놈인데 이젠 아프다고 말한다. 발가락 사이에도 물집이 있는데 거긴 더 괴롭겠지. 그런데 희안하게 나는 물집이 하나도 안 났다. 결국 무전여행이 끝날때까지 내 발은 깨끗했는데 나도 왜 그런지 이유를 모르겠다. 신발이 좋아서 그런가, 아님 평소에 러닝을 열심히 해서 그런가. 희안하네.

아무튼 영민이의 고통은 계속 심해져만 갔다. 그렇게 몇 시간 걸어갔을까.

"드디어 마산 시내다!"

 마산의 월영 광장에 도착했다. 이 곳은 마치 홍대거리가 떠오르는 곳이다. 다양한 매장에 이마트에 롯데마트 등 대형마트까지 있기 때문에 엄청난 인파가 있었다. 우린 시내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자연스럽게 온 몸을 휘감고 있던 수건을 조용히 가방에 넣었다. 아무리 쪽팔리지 않는 것이 규칙이라고 해도 이런 복장으로 시내로 들어가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진도 이 곳에선 한 장도 안 찍었다.

 우린 일단 롯데마트에 들어가서 시식탐험을 했다. 이번 시식이 지금까지의 여행에서 세번째였는데, 먹으면서 둘의 대화가 대충 이랬다.

"형. xx가 이거 좋아하겠다."
"어. 그런데 좀 비싸네. 저 부위가 좀 싸겠다. 많이 먹을려면 저게 낫겠지?"

 이젠 자연스럽게 이런 헛소리를 하면서 먹게 된다. 시식대 앞에 있는 아주머니 입장에서는 저 대화가 어떻게 들릴까? 

1. 이 자쉭들 쇼하네.
2. 고갱님. 제발 사가세용.

 우리는 아주머니가 2번으로 생각했으면 하고 바라면서 시식을 하고 돌아다녔다. 시식을 마친 후 마트 정수기에서 물까지 가득 채웠다. 좋아. 좋아. 여기에서 물 채우는 건 눈치도 안 보이고 좋은데?

 롯데마트에서 나온 후 우리는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근처의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나는 조그마한 라면과 빵을 골랐다. 라면이 아무리 지겨워도 가격 대비 최고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점원이 나를 보면서.

"무전여행 하나봐요?"
"네. 근데 어떻게 알았어요?'
"다리가 시꺼매서. 썬크림 좀 바르지..."

난 이때부터 내 발에 신경쓰기 시작했다. 자리에 앉아서 다리를 살펴봤는데 너무 껌했다. 얼마나 촌스러보일까? 

"영민아. 다리 탄거 좀 티나냐?"
"어. 반바지 윗부분이랑 색깔 차이 너무 난다."

 나는 바지를 살짝 위로 올려봤는데. 이런 썅. 바지의 위와 아래가 백인과 흑인 얼굴을 마주댄 것 같은 색상 차이가 난다. 누가봐도 탄 다리 색깔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문제인건 살짝만 건드려도 무진장 아팠다. 어쩐지 나뭇가지에 스치기만 해도 아프더라니 이게 타서 그런거였구나. 젠장!

"아오! 디게 아프네"
"형. 그냥 긴바지 입어."

 정말 톡하고 건드려도 싸하게 아팠다. 그래도 긴바진 싫은데, 난 땀 차는 느낌을 너무 싫어하기 때문이다. 반바지가 바람 잘 통해서 얼마나 시원한데... 그냥 참을까? 

 내가 이런 고민을 하고 있을때 영민이도 물집에다가 반창고를 다시 붙이기 시작했다. 아까부터 점점 아프다고 하더니 이젠 잘 걸을수도 없게 되었다.

 난 이번 여행에서 총 세번의 큰 결정을 내려야 했는데 이번이 그 첫번째였다. 영민이 상태를 보건데 도저히 여행을 끝마칠 수 없는 상태였다. 이대로 억지로 걸어가는건 여행이 아니라 고행인 것이다.

1. 영민이를 집에 돌려보내고 나 혼자 간다.
2. 이대로 여행을 끝낸다.

 난 이번여행을 몇 년동안 가려고 벼르고 있었다. 그러다가 지금의 나이까지 왔다. 곧 취직을 하거나 진학을 하거나 둘 중의 하나는 할텐데, 이제 무전여행은 가기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 여행을 몇 년동안 기다렸고, 앞으로 다시는 가기 힘들지도 모른다. 내 상태는 괜찮으니까 영민이를 돌려 보내고 혼자 여행을 마치자가 1번이다.

 그러나 이번여행은 영민이와 함께 시작했다. 둘의 여행인데 혼자 끝마친다면 그게 의미가 있을까? 내가 과연 여행을 끝마치고 기뻐할까? 걱정을 하지 않는 여행인데 여행을 끝마치면 걱정부터 하게 되지 않을까? 그런건 원하지 않는다. 차라리 지금 끝내자. 앞으로 혹시 기회가 또 올지 모르니까가 2번이다.

 나는 굉장히 이기적인 놈이다. 결정적인 순간에 나만 생각한다. 평소에 남을 배려하는 놈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유실이에게 너 정말 자기중심적이다라는 말 들었을때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모른다. 그때부터 줄곧 생각해봤는데, 나는 내가 이기적인 것을 들킬까봐 무서워서 배려흉내를 낸 것이었다.

 항상 나만 생각하는데 그런 나를 혹여나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될까봐 무서워서 소극적인 성격이 된것 같다. 항상 상대방의 의사를 물어보지만 이미 난 결정을 내린 후다. 그리고 생각한다. 제발 내 생각대로 한다고 말해. 제발. 제발.

 상대방과 의견이 맞으면 좋은 거고, 안 맞으면 출발이다. 좋지 않는 결말을 향해서. 나는 그래서 항상 인간관계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살았는지도 모른다. 나만 생각하는 인간이 인간관계가 좋을리는 없으니까. 

 너무 극닥전으로 생각을 한다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상황이 나에게는 매우 심각했다.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짧은 시간에 많은 생각을 했다.

이제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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