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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까지 걷다 - 셋째 날(3)

yundabal 2017. 9. 2. 00:41

부산까지 걷다 - 셋째 날(3)

"걸을만해?"
"아니. 좀 많이 아프긴 하네. 형 좀만 쉬자."

 편의점에서 나와 걸은지 채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우리는 잠깐 쉬기로 했다. 영민이의 물집에 붙였던 밴드가 떨어질려고 해서 다시 제대로 붙여야 했기 때문이다. 건물 입구 턱에 걸터 앉아 천천히 양말을 벗는 영민이의 모습을 보고 나는 마음을 굳혔다. 

집에 가자... 이대로는 안되겠어.

 영민이에게까지 이기적인 생각을 하고 싶지가 않다. 솔직히 내가 그런 생각을 조금이라도 했다는 거 자체가 굉장히 열받는다. 그런데 좀처럼 저런 생각이 없어지지가 않는다. 반면에 난 혼자 계속 여행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둘이 여행하다가 혼자 여행을 할 자신도 없었고, 이제와서 혼자 걷는 것이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그래. 아쉬움은 아쉬움일 뿐 후회로 남기지는 말자.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나는 이 생각을 나랑 가까운 사람들에게 떠들고 다녔는데, 그만큼 어떤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내가 변하지 않았다. 28년간 난 변하지 않았고 그래서 난 확신했다. 씨발,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아. 그런데 제발 지금은 좀 변하자. 나만 생각하는 그 빌어먹을 개같은 이기심에서 좀 벗어나자.

그러다 문득 영민이의 열린 배낭을 보던 나는...

"영민아. 운동화가 아프면 슬리퍼로 갈아 신어."
"그럴까?"

 가뜩이나 온 발에 물집이 가득한데 운동화의 그 좁은 공간으로는 발가락이 너무 고통스러울 것 같았다. 슬리퍼로는 장기간 걷는 것이 운동화보다 당연히 힘들지만, 지금 당장은 편한 것이 낫다. 영민이는 운동화를 배낭에 넣은 후, 슬리퍼로 갈아 신었다. 

 우리는 다시 걷기 시작했고 나는 영민이에게 집에 가자고 말할 타이밍을 계속 재기 시작했다. 이왕 여행을 포기하는거 빨리 집에가는게 더 낫다.

"슬리퍼가 좀 어때?"
"운동화보단 조금 나은거 같아. 그냥 비슷해."

10분 후...

"어때?"
"확실히 슬리퍼가 낫네. 형 센스 있는데? 어떻게 슬리퍼 생각을 했어?"

 대반전이다! 영민이가 생각보다 슬리퍼를 신고 잘 걸었기 때문이다. 슬리퍼를 신어서 발이 아예 안 아픈건 물론 아니다. 근데 운동화보단 아픈 정도가 훨씬 약하다고 한다. 아무리 그래도 슬리퍼 신고 걷는게 편하게 느껴진다니.. 운동화가 어지간히 최악이었나보네.

"나 이대로 쭉 슬리퍼로 부산까지 갈래."

 그렇게 걷다보니 영민이의 걸음 속도가 어느새 나를 능가하게 되었다. 하하하. 지금 상황이 너무 웃긴다. 역시 세상일이란 어떻게 풀릴지 전혀 몰라. 그렇게 고민했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풀려버릴 줄이야.

3. 슬리퍼를 신고 간다

 내가 2번까지만 생각하고 3번 슬리퍼 생각을 왜 못 했을까? 두 가지 중에서 무조건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생각에 뇌가 굳었나보다. 아무렴 어떤가? 우리는 계속 여행을 할수 있다!


<아파트 단지 앞의 공판장>

 우리는 한참 걷다가 아파트 단지 앞 그늘 아래에서 잠시 쉬었다. 사진에서 보다시피 아파트 바로 앞에 해산물을 파는 공판장이 있다. 저 아파트 주민들은 생선 걱정은 없겠는걸? 아니 생선 냄새에 질려버려서 아예 안 먹을려나?

"나 바지 갈아입고 올께."

 결국 나는 근처 아무 건물이나 들어가서 긴 트레이닝 바지로 갈아입었다. 인간적으로 다리가 너무 아팠기 때문이다.  손을 아주 사알짝 갖다 대기만 해도 너무 쓰라렸다. 당장 더운게 문제가 아니다. 지금 이상 더 타버리면 정말 심각하지겠다는 생각에 어쩔수가 없었다.

 갈아입고 조금 걸었는데 긴바지도 생각보다 괜찮았다. 별로 덥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아직 많이 안 걸어서 그런가?


<마산 자유무역지역의 지루한 도로>

 다리 하나를 건너니까 나타난 마산 자유무역지역. 커다란 크레인과 자동차 외엔 보이지가 않는 지역이다. 보는 것도 걷는 것도 다 지겹다. 정말 저렇게 쭈욱 일자로 된 길은 최악이야. 이번 여행을 통해 깨달은 것 중에 하나가 지루한 것이 곧 힘든 걸로 연결된다는 가다. 지겹다고 생각하면 시간도 안 가고, 길도 멀어지고, 발도 무거워진다. 그 와중에 지금처럼 덥기까지 하면...


<뭔가 메시지가 있는 사진?>

 위의 사진은 평범한 사진을 찍기 싫어서 나온 샷이긴 한데.. 나는 도저히 색다른 포즈도 생각 안나고, 그럴 힘도 없어서 그냥 다리 아픈걸 표현했다. 웬일인지 사진상으로는 피부가 그나마 밝아 보이는데, 정말 상태가 최악이었다. 얼굴과 팔을 바른김에 다리에도 좀 바를껄. 이 지경까지 오도록 나는 왜 몰랐을까? 

영민이의 사진은 그냥 넘어가기로 한다. 쇼생크 탈출인 것 같다...


<BYE! 마산!>

 여행중에 가장 반가운 문장이 사진에 나와있다. "안녕히 가십시오"와 "어서 오십시오" 같은 인사말. 저 문장들은 사자의 엉덩이에 키스를 퍼붓게 하는 마력이 깃들어 있다. 저걸 보기위해 우리는 그렇게 여행을 했나보다. 그렇다면 이 여행의 끝인 해운대가 우리에게 인사할 땐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난 좀 생각한게 있다. 모 영화처럼 최대한 감격스러운 모습으로 모래사장에 엎드려서 땅에다 키스를 해야지.


<창원 도착!>

 마산을 지난 우리를 맞이한 곳은 창원이다. 통합 창원시로 합쳐지기 전에는 여기는 창원이지 않았나 싶다. 군생활을 진해에서 했던 나에게는 마창진 시절이 더 기억에 남는다. 여기가 예전에 어디였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그냥 앞으로 마창진으로 구분하기로 했다. 

창원시 하나를 삼일 여행하는 것보다, 세 개의 시를 여행하는 게 더 뽀대도 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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