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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까지 걷다 - 넷째 날(1)

yundabal 2017. 9. 5. 22:22

부산까지 걷다 - 셋째 날(1)

모기 - 파리목[雙翅目] 모기과 곤충의 총칭. 

"아우 쓰벌!"

 자려고 누운지 5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사방에서 모기들이 달려들었다. 위잉 위잉 거리는 끔찍한 소리들에 도저히 잘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어제와는 달리 바람도 전혀 불지 않고 더워서 모기들이 활동하기에 더 없이 좋은 환경이다. 아우 이걸 어쩐다. 일단 침낭 속으로 푹 들어가볼까..

그런데...

"아. 더워!"

 어제는 침낭이 조금 얇은 듯 해서 불안했었는데 오늘은 너무 두껍게 느껴졌다. 벌써부터 다리에서 땀이 차오른다. 아. 제기랄! 잠 잘때 내가 제일 싫어하는 세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 두개가 지금 나에게 닥쳤다. 모기와 더위. 아 싫다. 싫어... 그래도 어쩌겠는가... 어떻게든 참고 자보자.

(몇시간 후)

 한 숨도 못 잤다. 정말 욕 밖에 안 나온다.. 침낭으로 온 몸을 둘러쳤건만 그 사이를 뚫고 모기가 들어왔나 보다. 온 몸이 가려운걸 보니 말이야. 특히나 손이 많이 물려서 퉁퉁 부었다. 짜증나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아.

"형도 못 잤어?"
"어..."

잠 못 자기는 영민이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노숙은 이제 그만하자. 도저히 못 자겠어."

 영민이가 자뭇 심각하게 애기했다. 나도 마찬가지로 심각했는데 영민이와는 이유가 좀 다르다. 난 전혀 노숙을 그만둘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고작 이틀만 자고 침낭을 버리는 것은 뭔가 아쉬웠다. 오늘은 어떻게든 자고 모기향을 사던가 해서 내일까지는 버텨볼 생각이었다.

나는 일단 대답을 안 하고 대충 얼버부렸다.

"일단 짐 챙기고 아까 본 주차장으로 가자."

 나는 아까 전에 이 곳으로 오면서 조그마한 주차장을 봐뒀었다. 조그마한 곳이어서 구석에 잠 자기엔 괜찮았다. 일단 잠은 자야했기에 영민이를 데리고 그 곳으로 갔다. 다행히 구석에 주차공간이 있었다. 바로 옆에 차가 주차되어 있었기 때문에 사람 눈에 띄지도 않았다. 일단 대충 침낭을 깔아놓고 바로 잠에 들었다.

(새벽 4시)

위잉... 위에엥... 니들은 못 자아아아에에에에에엥

"으아. 정말 x 같은 모기들!"

 자면서 수없이 많이 잠에서 깼다. 손은 가렵지 않은 곳이 없고, 얼굴도 많이 물린 것 같다. 옆을 돌아보니 영민이도 깨어 있었다.

"영민아. 잠은 좀 잤어?"
"아니. 나 한숨도 못 잤어. 형 이제 이거 그만하자. 이렇게는 더 이상 안되겠어."
"잠깐만.... 좀 생각해 보고."

 이번 여행에서 내가 두 번째로 크게 고민한 순간이다. 난 무슨 결정을 내릴 때는 서로의 반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버릇이 있다. 이번에도 그렇게 해보자.

1. 최대한 참고 내일까지 노숙을 한다. 이틀만 침낭을 사용하고 여행을 마친다는 것이 스스로에게 너무 창피하다. 고작 이럴려고 무거운 침낭을 들고 온건 아니지 않는가? 오늘은 일단 이렇게 버텨보고 내일은 모기향을 사던가해서 하룻밤만 더 노숙을 하자.

2. 노숙을 그만둔다. 오늘밤은 너무 괴로웠다. 이런 밤을 한번 더 보낸다는 것이 너무 끔찍하다. 침낭을 들고운 수고가 아깝긴 하지만 어쩌겠어. 상황이 이런 것을. 열심히 가면 오늘 안에도 부산을 갈 수 있잖아? 그렇다면 굳이 노숙을 할 필요도 없지. 이틀 노숙에 자존심이 좀 상하긴 하지만 영민이도 저렇게 못 자는데 강요할 순 없어. 사실 나도 충분히 괴롭고 말이야.

턱을 괴고 몇 분동안 계속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내린 결론은...

"에이. 썅. 침낭 버려. 오늘 안으로 부산 가자!" 

 노숙을 앞으로 더이상 안 할거라면 침낭을 들고 다닐 필요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 싸구려 침낭을 앞으로 사용할 일도 없을 것 같아서 버리기로 했다. 잠을 못 자나서 장난 아니게 짜증났었기 때문에 저 침낭은 쳐다보기도 싫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웃겼다. 몇시간 전까지만 하더라도 여행 마칠때까지 침낭으로 잠을 해결하자고 했건만. 결국 이렇게 버리게 되는 상황이 왔다. 만약 모기향을 가져왔더라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아니다. 모기장을 가져왔어야 했어. 그러나 하루전에 짐을 꾸린 우리에게 모기장까지 챙기기엔 좀 무리였다. 또한 이번주에 비가 드문드문 내린다고 들었기에 모기 걱정은 안 할줄 알았다. 에휴... 미리미리 준비 좀 할껄!

 주차장 구석에 침낭과 매트릭스를 쳐박아두고 우린 씻기 위해서 학교로 향했다. 학교는 이른 새벽임에도 문이 열려 있었다. 시원한 물로 머리를 감으니 정신이 좀 깬다.. 뭔가 속 시원한 결정을 해서 그런가 생각보다 그리 피곤하지가 않다. 그래. 오늘 안으로 부산 가버리자. 내일 해운대를 실컷 만끽해야지.

새벽 5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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