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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초보/무전여행 - 통영to부산

부산까지 걷다 - 마지막 날(1)

yundabal 2017. 12. 20. 00:12

부산까지 걷다 - 마지막 날(1)

 자다가 깨는 것을 반복한다. 여기는 분명 따뜻하고 편안한데 말이야. 이상하게 밖에서 잤던 것보다 더 불편하다. 몸은 나른한데 마음은 긴장감에 날이 서있다. 여행은 다 끝나가는데 불안감은 더 커졌다. 미칠 것 같다. 누군가가 나에게 뭐든지 확실하게 말해줬으면 좋겠어. 뭐든지 말이야. 

 선잠에 정신을 못차리다보니 어느새 시간은 8시가 지나 있었다. 사람들이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한다. 다들 표정에 피곤함이 보이는 걸 보니 찜질방은 확실하게 잠 들기에 편안한 곳은 아니다. 오늘 할 일이 많다보니 우리는 서둘러 일어나서 씻으러 목욕탕에 들어갔다. 

 다 씻고 나니 좀 개운하다. 그렇게 상쾌한 맘으로 옷을 갈아입다가 영민이의 사물함을 봤는데.

"엥? 너 바지 다 안 말랐네?
"그냥 입으면 마르겠지 뭐."

 어제 빨고 사물함 안에 걸어 놓았던 영민이의 츄리닝 바지가 아직 다 안 마른 상태였다. 영민이는 금방 마른다고 입었는데, 내가 옆에서 보기에는 너무 찜찜해 보였다. 본인이 괜찮다고 하니까 뭐... 넘어가자. 

 우리는 찜질방을 나오고 지하철을 타고 해운대로 향했다. 아침을 찜질방 근처에서 먹을려고 했는데, 딱히 괜찮은 곳이 안 보였다. 솔직히 말하면 다 비쌌다. 무전여행의 룰을 깨긴 했지만 그래도 돈을 최대한 아끼고 싶었기 때문에 그냥 해운대 근처에서 먹기로 했다.

 나는 예전에 딱 한번 해운대를 갔었다. 그때에도 별다른 느낌이 없었는데, 오늘도 딱히 그 때와 다를 것 같진 않다. 그런데도 살짝 기대가 되는 이유는 뭘까... 지하철에서 내리면 곧 우리의 여행은 완전 끝이다. 그리고... 몇일 전까지의 우리의 현실이 다시 다가올 것이다. 무섭다. 사람을 한 없이 작게 만드는 그것들이 제발 내게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행이 끝나는게 무섭지만 그런데도 난 해운대를 빨리 가고 싶었다. 목표를 달성한 그 후련함을 빨리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우리의 여행은 판타지다. 걷고 먹고 자고 이 세가지 밖에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굉장히 비현실적이지 않는가. 우리는 하루종일 쉴새없이 걸었으며,  빵 하나도 최대한 아껴서 먹었고, 밤에는 잘만한 곳을 미친듯이 찾아 다녔다.  이 외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나는 내 주머니 속의 꽉 차 있던 빌어먹을 그 쓰레기들을 길 위에 버리면서 걸었다. 여행이 거의 끝나가는 지금은 딱 한개만 주머니 속에 남아 있다. 다시 걱정들이 찾아올 것 같은 불안감이 남아있다. 이건 도저히 버려지지가 않는다. 저 불안감을 떨쳐버리지 못하면 점점 더 주머니가 쓰레기들로 채워질텐데. 내가 간절히 원하는 것들로만 채우고 싶은데......나는 과연 그럴수 있을까? 난 정말 그럴 수 있을까? 나는 할 수 있을까...

"와~ 사람 봐라."
"형. 우리 가방 저기에 보관하고 가자."

 해운대역에 도착하고 우리는 가방을 보관함에 넣었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역에는 사람이 많았지만, 역에서 바닷가로 이동하는 거리는 생각보다 한산했다. 우리는 길 위의 음식점들 중에서 좀 한산해 보이는 중국집으로 들어갔다.

"아. 기차 어떻게 하지?"
"형 하자는 대로 할께. 형이 결정해."

 어제 얘기했던 무임승차건이 나를 끝까지 괴롭혔다. 이건 도무지 결론을 내리지 못하겠다. 여행에 영향을 주는 고민이 아니라, 끝난 후의 행동을 고민하는 것이라서 더욱더 그렇다. 난 결정을 못 내리고 어제 통화했던 명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가끔 서울에서 모임을 가질때 명희가 기차를 타고 왔기 때문에, 이 쪽으로는 많이 알 것 같았다. 나는 통화를 하면서 명희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았고. 결국 명희가 결론을 내줬다.

"오빠. 그냥 돈 내고 타."

 남자를 움직이는 건 역시 여자다. 결국 무임승차는 포기했다. 사실 너무 쫄렸다. 무임승차 하다가 역무원에게 바로 걸릴 것 같았다. 그러면 무슨 챙피람... 어쨌던 여행의 세 개의 고민중 마지막을 해결했다. 

 아침을 해결한 우리는 해운대로 이동했는데, 역시 특별하게 느껴지는 건 없었다. 그냥 바다일 뿐이었다. 조금 이른 휴가철이라서 그런지 사람이 많지 않아서 좀 썰렁하기까지 느껴졌다. 그런데도 막상 모래사장을 밟고나니까 무전이 아니라 진짜 여행을 하는 느낌이 들었다. 어쨌든 이번 여행은 끝났다!!!


[드디어 해운대에 도착했다!!!]

4박 5일의 여행이 드디어 끝이 났다. 우리는 해냈다! 목표를 이룬 성취감으로 머릿속이 가득하다. 그 외에 어떠한 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 난 해냈어. 해냈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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