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초보/무전여행 - 통영to부산

부산까지 걷다 - 첫날(3)

yundabal 2017. 8. 27. 00:02

 부산까지 걷다 - 첫날(3)

 차로 이동하면서 두 분은 우리의 무전여행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셨다. 우리가 챙긴 것들과 앞으로의 계획 등을 들으시더니 두분이 내리신 결론은.

"에잉. 준비를 하나도 안 했네?"
"......"

 할 말이 없었다. 사실 우리에게 이번 여행을 준비할 시간은 충분하다 못해 흘러 넘쳤었다. 그러나 무전여행인데 준비는 대충해도 된다는 말로 시간을 그냥 흘려보냈지. 돈 안 쓰는 여행인데 준비는 무슨. 그냥 중요한 것만 챙기고 떠나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우리 배낭에 들어있는 물건들은 여행 출발 전날에 산게 대부분이다.. 

 차로 한 10분 넘게 달렸다. 10분. 참 짧은 시간이다. 하지만 저 위험한 거리를 조심하면서 걸을려면 얼마나 걸릴까? 세시간? 아니, 어둡고 위험하니까 훨씬 더 걸릴수도 있을꺼야. 우리가 이 차를 얻어 탄 건 정말 신의 한수라는 생각이 계속 든다.

 두 분과 얘기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우리 잠자리 얘기가 나왔다. 두 분에게 우린 건물 옥상이나 정자 같은 곳에서 잘거라고 말했다. 말하면서도 참 착잡하다. 시내에서 내리자마자 잠자리를 찾으러 다녀야 하니까 말이다.

"우리 아파트 앞에 정자 있는데 거기서 자라. 내가 관리인에게 말해 놓을께."

 아저씨의 말씀에 귀가 번쩍 뜨였다. 이 얼마나 달콤한 말이던가. 잠자리가 해결되었다는 생각에 갑자기 긴장이 확 풀렸다!

"그냥 얘네 우리집에서 재워요. 밖에 춥자나요."

 내가 잘못 들었나? 우릴 재운단다. 집! 에! 서! 순간 아줌마의 뒷모습에 광채가 나는 것 같았다. 우린 그러실 것까지 없다고 정자도 충분하다고 말했지만 결국 집에서 자는 걸로 결론이 났다. 정말 죄송스럽고 감사했다. 내가 두 분의 입장이라면 누군가를 재울 수 있을까? 돈을 쥐어줄 순 있겠지만 재워주는 건 도저히 못 할 것 같다. 요즘같이 위험한 세상에 처음 본 누군가를 어떻게 믿는단 말인가? 정말 고마우신 두 분이다.

 지하 주차장에 주차된 차를 뒤로하고 우린 두 분 뒤를 졸졸 따라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문 열고 들어가는 순간까지 시간이 어찌나 길던지. 정말 많이 긴장했다. 그리고 집에 들어갔는데. 집이 정말 좋았다! 우리가 이런 황송한 데에서 자다니. 무전여행 첫날부터 일이 너무 잘 풀린다! 영민이랑 나는 집을 둘러보면서 서로 놀란 토끼눈으로 연신 서로를 쳐다봤다.

"가방은 저기에 두고 너네 피자 좀 먹을래?"

 피자!? 컵라면만 먹다가 갑자기 피자를 먹게되니까 우린 어리둥절했다. 첫 날부터 대박이라는 생각이 계속 든다. 대박이다 대바아악!


<피자다!>

 난 피클도 저런 피클은 처음 먹어봤다. 피자 가게에서 먹는 그런 피클이랑 다르게 생겼는데... 유기농 피클 같은건가? 정말 이번 여행 취지(무전)에 맞지 않게 고급스럽다. 테이블, 깔개, 포크 등이 호텔알바할때 본 거랑 비슷하다. 우리는 분위기에 압도되어 포크로 스테이크 썰어먹는 느낌으로 조심스럽게 먹었다.

 피자를 다 먹고 찾아온 후식 타임. 보통 집에서 과일 먹을때 가운데 그릇 하나 두고 집어 먹지 않나? 그런데 아줌마는 인원수대로 접시를 가져오셨다. 수박, 참외 등등. 거기에다가 수박은 사각썰기를 해서 가져오셨다. 사각썰기. 우리 같은 놈들을 위해서 이런 수고로움을....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과일을 먹으면서 두 분과 여러가지 긴긴 대화를 했다. 두 분은 압구정동에서 사시다가 퇴직을 하시고 지방으로 내려오셨다고 한다. 처음엔 제주도를 가셨다가 두번째로 온 곳 통영이다. 아저씨는 지금 이곳 저곳에서 무료강의를 하신다고 한다. 또 두분은 여행을 많이 다니셨다고 하셨다. 들어보니 안 다녀본데가 없을 정도이다. 주변 풍경을 감상하기엔 차보다는 걷는게 가장 좋다고도 하셨다. 그러나 난 속으로 걷는건 좋지만 무전여행만큼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했다. 정말 무전여행은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가 없다. 머릿 속에는 목적지와 살아야 한다는 생각 밖에 없다. 덥고 힘들고 배고프고 혹여 딴 생각했다가 차에 치어버릴 수 있다. 특히 터널에서는 휴. (터널은 이틀후에나 경험하게 된다.)

아저씨가 하신 말씀 중에 인상 깊었던 건.
첫째, 빠른 은퇴를 해라. 젊었을 때 힘들어도 열심히 일해서 많이 번다. 그리고는 은퇴를 해서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라. 하고 싶은 것을 해라. 나처럼 지방에 내려와 내가 받은 것을 주변 사람에게 배푸는 삶도 좋다.
둘째, 줏대를 가져라. 흔들리지 말고 중심을 잡아라. 이런 말 저런 말 하나하나 흔들리면 답이 없다. 

 요즘 나는 대학원에 갈까, 취직을 할까가 가장 고민이었다. 대학원을 가고 싶은 이유는 딱 하나 전문대가 쪽팔리기 때문이다. 공부가 더 하고 싶다느니하는 것은 다 핑계고 진짜 이유는 학력세탁이다. 대학에 가기엔 나이가 적지 않고 대안으로 생각한게 대학원이다. 가는건 문제 없고 간다면 난 정말 잘 할 자신이 있다. 

 아는 형님들이, 또는 인터넷에서 그런다. 전문대로는 연봉의 한계가 있다고.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라고. 난 흔들렸다. 겁부터 먹었다. 그래서 생각한게 대학원. 근데 딱히 갈 이유가 없다. 모 교수님이 대학원 갈 이유가 타당하다면 추천해주겠다고 생각해오라고 하셨었다. 그런데 난 못 찾아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없기 때문이다. 

 난 부러지는 갈대다. 누군가 후 불면 마구 흔들린다. 바람이 그치면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하고 결국 부러진다. 대나무처럼 부러지는 갈대. 한심의 극치다. 줏대라는 단어는 내가 정말 많이 쓰는 단언데 이렇게 와닿은 적이 첨이었다.

 영민이에게 아저씨와의 만남이 인연인가하는 생각도 들었다. 앞으로 영민이가 할 직업에 도움이 되는 분들을 많이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실제로 도움이 된다면 도와주신다고 하셨다. 이 얼마나 행운인가?

 후식타임도 끝나고 잘 준비를 했다. 내가 먼저 샤워를 했다. 샤워. 이게 말이 되는가? 무전여행에서 샤워를 하다니. 샤워기를 들면서도 신기했다. 내가 지금 샤워하네? 누가보면 미친놈인줄 알것이다. 그렇게 실실 쪼개면서 씻는 모습을 보면. 씻고 나와보니 아줌마가 영민이를 보면서 웃고 계셨다.

"애. 니 동생 좀 봐라. 하하"

영민이는 가방 정리를 하려던 건지 온갖 물건을 다 꺼내 놓았다. 알고보니 가져온 가방 안에서 샴푸가 새는 바람에 물건들에 다 묻은 거였다. 그런데 아줌마는 그걸 보고 웃으시는게 아니었다.

 


<영민이가 가져온 물건들>

위 사진에서 드라이기 보이는가? 바로 드라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미리 영민이에게 들어서 가져온건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보는건 첨이었다. 나도 보자마자 바로 빵 터졌다. 무전여행에서 드라이기라. 푸하하.

"로션 들어봐라. 무겁지?"

 아줌마의 말에 저 예사롭지 않게 생긴 로션통을 들어봤다. 묵직하다. 영민이가 나보다 덜 챙겼는데 더 무거운 이유는 저런 것 때문이었다. 샴푸도 대형 샴푸였다! 영민이도 머쓱한지 아무 말도 못했다. 그렇게 세명은 향기나는 짐들을 보며 엄청 웃었다.

"너네 둘이서 같이 잘꺼지?
"네."

 아까 얼핏 들었는데 처음엔 각각 방을 따로 주실려고 하셨다. 정말 황송함의 끝이다. 우린 오늘 이 대박경험을 얘기하고 싶어서 같이 자겠노라 했다. 그리고 방에 들어가자마자 속마음들을 꺼내놨다.

"형. 우리한테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기지?"
"그러게. 첫날부터 이렇게 좋으면 안되는데."


<첫날은 침대 위에서 자다>

앞으로 남은 5일 오늘보다 좋은 일은 절대로 생기지 않을 것이다. 이건 확실하다!

* 첫 날 이동거리(약 16km) *

* 첫날 지출 내역 *

라면 두개 (2,000원), 버스비(1,100원) : 총 3,100원